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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만공 국침 정여각 보수
이름 국길상 날짜 2012-07-02 [12:11] 조회 11135 추천 4208

송만공 국침 정여각 보수

아버지가 첨추 휘 수성이시고 어머니는 진사 밀양박석정의 여식으로 5형제(함, 침, 홍, 명, 렴)를 두셨다.
침은 1576년 2월 5일 생으로 성품이 인자하고 총명함이 범인과 달랐고 효성이 지극하여 1621년 부모의 상을 마친 후 고산현감 이후탁과 박후유건이 감동하여 효행편을 조정에 전달하고 도신, 남선이 포계(襃啓)하니 1650년에 명정(命旌)되고 세금과 요역을 면제해 주니 공의 춘추 75세(1654년) 때다.

문장의 정수함은 우복 정경세에게 수학함이요 선비 사귐은 죽마고우 구공영과 표옹, 송공, 영구와 서귀이, 공기발 같은 분들이 존중하지 않음이 없었다.

1613(광해15)년 형(함)과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난세에 뜻이 없어 과거를 포기 하고 경전을 강론하고 훈육하다 1658(효종)년 79세에 천수를 다하시니 제자 사우가 임광(臨壙)하여 애통해 하였다.

1668년(현종,무신)년에 반곡사를 세워 호남의 사람과 제자들이 환성, 송만을 위해 조두지례(俎豆之禮)를 받들었다.

이런 훌륭한 선조의 정여각이 낡고 퇴색하여 후손 17명이 뜻을 모아 지난 해 9월 15일 모여 보수 추진에 합의 하여 추진위원장과 총무, 추진위원, 감사를 호선하여 3,000만원의 보수 성금을 모으기로 결정하여 10월23일 보수 공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성금을 모아 작년 12월 23일 일가분 80 여 분과 동네 이웃까지 모여 온 고을의 잔치날로 성대한 완공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보수는 과거 보수와는 달리 블록 담을 걷어내고 주물 울타리와 황토 시멘트를 이용한 바닥과 아래 뜰은 고급 돌을 깔아 문화재로서의 기치를 더하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송만공 국 침 정여각의 유래 와비까지 만들어 놓음으로서 그저 단순한 정여각으로만 알고 있던 후손들도 그 유래를 알게 되었고 훌륭한 조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자부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송만공 국 침(22세손) 후손은 많지 않으나 집안 모두의 단합된 힘의 결집이었다. 성금을 많이 낸 사람이 200만원 1명에 그야말고 십시일반의 쾌거였다. 보수에 든 비용 3,000만원 목표 달성은 물론 공사가 끝난 후 1,300 여 만원의 잔액으로 앞으로 시제는 물론 집안의 후손 양성에도 다같이 참여하자는 고귀한 의견에 힘 입어 매년 2회 씩 모여 모임을 가져 우리 집안의 대 소사도 논의 하며 친목도 도모하자는 모임까지 완성되었다.

일을 추진한 사람의 입장으로 과연 송만공의 자손으로서 자긍심이 한층 더하게 되었다. 약 20년 전 집안 제단을 만들기 위하여 5명이 모여 3년 간 3,000 만원 모으기로 합의하고 추진한 결과 계획이 2년이 압당겨져 1년 만에 모든 공사를 마친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우리 집안의 단합되고 선조의 얼을 본받으려는 그 고귀한 정신이 변하지 않았씀을 재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승구] 형님! 정말 좋은일 하셨군요. 행복하세요 -07월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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