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국씨 대종회 게시판

제목   꼭! 읽어보십시요
이름 국승구 날짜 2013-03-21 [10:25] 조회 8632 추천 3334

<여성은 어머니다. 또한 아내이다>: 

국경복(鞠景福)의 부인 황씨

조선의 여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뚜렷한 '이름'이 없었다. 
보는 것처럼 오직 ‘황씨’ 일뿐이고 
앞에 남편 ‘국경복’을 붙여야 비로소 누구인지 짐작한다.

일반적으로 ‘ㅇㅇ의 처’란 남자의 소유 개념이 숨겨져 있고 
남편의 예속물이란 뜻이 들어있다. 
이러한 지위에서도 여자(성)들은 살신성인 자세로(경쟁적으로) 살았으니 
남자들의 유도(?) 행태가 대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 여성의 천품이다. 
완주군(完州郡) 비봉면(飛鳳面)에서 
위력(偉力)을 발휘한 한 여성(女性)의 이야기이다. 

이 여인은 우주황 씨 '응침'의 딸로 1530년(중종 25 을유)생이다. 
고산 담양 국 씨를 중흥시킨 어진 할머니이다. 

이 어른의 손자가 함 · 침 · 홍 · 명 · 염 다섯인데 
모두 효와 학덕을 갖춰 향촌에서 알아주는 인물들이었다. 
이 집안 내력이 <고산지>에 간략하게 소개 되었으나 
신암 김정만 선생⟪신암유고집⟫4권 12p <단인황씨전>에 자세하다. 

시부모와 남편이 졸지에 죽었고 그 때 나이 25살이었다. 
홀몸으로 어찌할 수 없어 익산 친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에 풀칠을 하고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밤낮없이 길쌈과 바느질을 하였다. 
이러는 동안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아들이 크자 
서당동(비봉면) 옛집 시가 마을로 돌아 왔으나 
고생스럽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젊고 가난했던 시절 경황 중에 묻었던(?) 
시부모와 남편의 묘 자리가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인가 집에서 부리는 여자 애가 이상스러운 이야기를 한다. 
냇가에서 빨래 하는데 지나던 중이 반곡산을 가리키며 
"‘좋은 명당자리’ 인데…” 혼자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부인은 빨리 스님을 찾아 모시게 하고 그 혈처를 가르쳐 달라 사정하였다.
스님이 "그야 어렵지 않으나 
공교롭게도 ‘양화역’ 뒤라 묘를 쓰기에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웬일일가? 
얼마 후 '양화역'의 말과 사람이 까닭 없이 죽어 나가자 
역관이 상부에 보고 하고 명에 따라 ‘양화역’이 곧 ‘옥포역’으로 옮겨 가니 
하나님의 감동이라며 묘를 잘 썼다. 

고운 심성 황 씨 부인은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친척을 도우며
깨끗하게 살다가 
1608년 홀몸으로 고생을 이겨낸 가련했던 여인을 남편 무덤에 합장하자 
부부는 54년 만에 말없이 싸늘한 땅속에서 만났다.

오늘날 고산, 비봉, 화산 등지에서 번족한 담양 국 씨는 모두 
이 할머님의 후손이다. 
이래서 '담양 국 씨(潭陽鞠氏)'와 '우주 황 씨(紆州黃氏)'는
서로 간에 함부로 할 씨족이 아니다.

국 씨 수가 많다보니 '전주 완주 통합문제'에서 찬성 반대 양측 대표가 
공교롭게도 국 씨이다. 
선의의 타협이 일워져야 할머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출처]完州郡 飛鳳面 -한 여성(女性)'우주황씨(紆州黃氏)l'의 위력(偉力)|작성자유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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