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국씨 대종회 게시판

제목   박정희 사망공작 일지
이름 국자연 날짜 2019-05-12 [18:28] 조회 58 추천 11

박정희 사망공작 일지

1979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은 서울대병원에서 잦은 술, 담배, 육식으로 신장이식이 필요한 만성신우염을 진단받았다. 
자신의 장기 독재정권으로 인하여 사후 정치보복과 역사적 비난이 두려웠던 박정희와 딸 박근혜는 전두환의 정권승계와 미국에서의 신장이식수술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절차에 착수했다. 
박정희의 밀명을 받은 차지철 경호실장은 1979년 8월 미국 CIA와 출국작전 밀약을 맺었다. 
1979년 10월 26일 밤 9시를 기점으로 최규하 국무총리, 전두환 보안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노태우, 이희성 등은 짜여진 각본에 따라 각자의 역할대로 박정희 사망공작에 돌입하였다.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권총으로 피살되었다는 조작된 시나리오를 감행하였다. 
TV와 신문사 등 모든 언론매체를 활용하여 발표하였다.  
2019년 5월 현재도 정부와 국회의원, 국정원은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될 일’이라며 언론매체들과 언론인들에게 돈을 주어가면서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3시 서울공항에서 박정희와 차지철 경호실장, 경호주임 이영도 외 경호원 4명은 송별나온 전두환과 인사를 한 후 미군수송기를 타고 미국 애틀란타공항에 도착하였다. 애틀란타에서 FBI가제공한 차로 워싱턴으로 이동하였다. 
한국영화의 한 장면에서 “4000만 국민을 잠재우고 이게 무슨 짓이냐!” 라는 대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신장이식수술을 위한 기초 의료검사를 마친 박정희는 1979년 12월 3일에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온 박정희는 전두환, 노태우 등에게 지시하여 12.12 신군부사태를 일으키는 등 정권승계를 위한 공작에 돌입하였다. 
박정희는 1980년 3월 20일에 허경영(본명:박경영)의 친부인 박상철이라는 신분으로 위장하고 신장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미국시각 1980년 4월 1일 밤 12시에 미국 메를린대학병원(현 뉴욕시립병원) 외과수술실에서 차지철이 제공한 신장으로 이식수술을 받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수술실에서 나왔다. 박정희 수술의무기록에 ‘Mr, Bak’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공교롭게 재미교포 3세 리차드 최가 메를린대학병원 수술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리차드 최는 광주 5.18 진압작전 직후인 1980년 5월 26일 밤 10시에 박정희의 수술부위 상태를 검진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신장주치의가 필요했고 리차드 최가 마음에 들었던 박정희는 그 인연으로 딸 박근혜와 약혼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리차드 최와 박근혜는 교제 중 성격차이가 심해 결국 결별하였다. 
서울시내에 박정희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떠돌던 1984년 박근혜 안기부 제1과장은 서울대병원 초청교수로 입국한 리차드 최를 박정희의 행적을 발설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암살을 지시하였다.
1984년 5월 6일 밤 10시 서울대병원 로비 입구에서 김무성과 정윤회가 리차드 최를 자동차로 유인, 납치하였다. 당시 리차드 최는 1984년 5월 6일 밤 11시 30분 비행기로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서울대병원 로비에서 전송한 의사들 중 1명이 현재 서울대병원 원장 서창석(전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이었다. 서창석이 김무성을 목격하였다. 
1984년 6월 KBS ‘추적60분’과 MBC ‘PD 수첩’에서 한국에 있지도 않은 리차드 최의 유족이 실종신고를 하였다고 방송하였다.
1984년 5월 6일 밤 12시 경기도 광주군 오포읍 능평리(당시)에 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 부인 소유의 목재공장에서 김무성과 정윤회가 전기톱으로 살해하고 시신조각들을 인근 야산에 묻었다. 
다음 날 공장직원 2명이 톱날에 묻은 피를 닦느라 고생하였다.

박정희

1980년 1월부터 1922년생 박상철이란 이름의 주민등록증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였다. 
1922년생의 박상철의 주민등록 원부는 경북 구미시 원미동에 있다. 실존 인물인 박상철은 허경영(본명: 박경영, 전 공화당총재)의 친부이자 박정희와 친 육촌 지간이다. 
박정희는 1991년 10월 사망하기 전까지 남산 안기부 501호실에 상주하면서 국내외 정치와 각종 공작과 작전을 지휘하였다. 
1981년부터 삼성동 주택(1982년 증축된 건물)에서 생활하였다. 타인 명의로 되어 있었다. 
1991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의 밀명에 의해 박정희는 사망하였다. 
사망 후 박근혜가 삼성동 주택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하였다


박근혜

박정희는 딸 박근혜를 국가지도자로 양성할 목적으로 중앙정보부 업무를 습득하기위해 1978년 중앙정보부 제1국 작전2 계장에 보하였다. 
1982년 1월 박근혜는 안기부 제1과장으로 승진하여 1990년 1월 박철언의 뒤를 이어 제1국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 후 남산 안기부 502호실에서 1996년 말까지 활동하였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에서 박근혜는 물론 정치인들의 이력을 소개할 때 어느 누구도 그들이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에 입사하여 활동하였다거나 타 기관에서 안기부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는 이력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 알아서는 안될 일이고 자신들의 활동은 중요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거나 언론을 통제하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떳떳하다면 왜 숨기겠는가?

2019년 5월 현재 정부와 국정원은 자신들의 방송보도 지침을 따르는 대가로 매월 500만원에서 200만원 가량의 돈을 기자 및 언론인들에게 특활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국정원의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은 국정원의 손과 발이 되었다는 것을 뜻 한다. 
기업은행통장의 자동이체 사항이 증거이다. 
CHANNEL A 나 TV CHOSUN 등 종편은 하루 종일 폭행, 절도, 강도, 살인 등 국민의 범죄사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방송을 한다. 잘 못 되었다는 게 아니다. 국민 상호간 이간질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의도가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오늘 어떤 사건이나 이슈로 국민의 생각과 관심을 사로 잡을까가 고민이다. 이 고민들의 해결사가 국정원과 TV 등 언론사들이다.
미움받친 정치인의 스캔들, 연애인의 불륜. 마약투여, 대기업 자녀들의 일탈, 고위 공무원의 간통, 일선 경찰관들의 뒷거래 등이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술책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편으로 갈리어 지지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정치인들의 뜻에 따라 TV종편들도 이런 의도를 가지고 편 갈아 방송한다. TV CHOSUN과 CHANNAL A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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